영화 모가디슈 실화 #2 - 실제 모가디슈에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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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 실화 #2 - 실제 모가디슈에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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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합쳐 탈출하자.

 

이제는 탈출 방법이 고민이었습니다. 구조기를 부를 수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과 교섭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문제는 이탈리아 대사관이 대통령 궁 인근에 위치하여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격전장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대사는 소말리아를 탈출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이탈리아 대사관과 직접 교섭하기로 했습니다.

 

소말리아 이탈리아 대사관
 소말리아 이탈리아 대사관

 

10일 아침 일찍, 강 대사는 현지 교포 이씨와 함께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강 대사를 태운 벤츠는 시외곽을 거쳐 총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는 시내 중심을 통과하여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했습니다.

 

시카 이탈리아 대사의 첫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자국 공관원들과 시민도 보호하기 버거운 상황에 군식구들 까지 떠안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협조 요청 대화

 

강 대사는 "하루라도 속히 여길 떠나고 싶으니, 도와달라" 면서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직원들과 회의를 하겠다면서 어디론가 사라진 시카 대사는 3~4시간 뒤에야 돌아왔습니다. 본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적십자사 구조기 한 대를 마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강 대사 일행에게 돌아갈 자리가 7~8석 밖에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카 대사는 "북한과는 수교하지 않아 곤란하니, 한국 직원들만 태우라" 고 권했습니다.

 

강 대사는 시카 대사에게 매달려 부탁했습니다. "우리끼리는 절대 못갑니다. 모두 데려가주시오."

 

시카 대사는 다시 본국 정부와 협의했고, 천신만고 끝에 군 수송기 한 대를 추가로 확보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남북한 일행들과 함께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이제 관저에 남아있는 일행을 안전하게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데려오는 일이 남았습니다.

 

미쓰비시 왜건
미쓰비시 왜건

 

시카 대사는 고맙게도 일본 미쓰비시제 왜건을 빌려줍니다.

 

관저로 돌아온 강 대사는 남북한 직원들을 모두 불러모았고, 전체 22명이 차량 4대에 나누어 타기로 했습니다.

 

선두에 설 벤츠 차량은 현지 교포 이씨가 운전하였고, 두 번째 김모 사무원이 운전하는 공관장 차에는 남북한 대사들이 함께 탔습니다. 북한 박모 서기관이 운전하는 왜건이 그 뒤를 따랐고, 마지막 차량은 계모참사관이 맡았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 남북한 대사관의 차량 행렬은 이탈리아 대사관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시내 중심가인 쥬마 거리에 들어서 중앙은행 건물을 막 지나가려는 순간, 칼날 같은 총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차량 행렬을 반군으로 오해한 정부군이 집중 사격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차량들은 우측 골목길로 들어섰고, 다시 좌회전하여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이어지는 큰길로 나왔습니다.

 

 

빗발치는 총알.. 북한 외교관 '불운의 피격'

 

그런데 세 번째 왜건의 상태가 이상했습니다. 똑바로 가지 못하고, 길의 중앙분리대 위로 뒤뚱거리며 올라갔다가 다시 뒤뚱거리면서 내려왔습니다.

 

300여미터를 더 달려, 선두차가 마침내 이탈리아 대사관 후문에 도착했고, 남북한 대사를 태운 두 번재 차량이 약간 옆으로 돌아서 멈췄습니다.

 

그 때 왜건 차량이 두 번째 차량의 옆구리를 쾅 들이받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차 안에서 북한의 박 서기관이 백지장 같은 얼굴에 코피를 흘리며 운전석 뒤로 젖혀져 있었습니다.

 

영화 모가디슈 中
영화 모가디슈 中

 

정부군이 쏜 총알이 운전석 좌측 옆구리 차체를 뚫고 굴절해 들어가서, 박 서기관 심장에 박혀버린 것이었습니다.

 

강 대사 일행은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들어가자 마자 박 서기관을 대사관 1층 사무실 복도 우측의 출입 통제 구역에 눕혔습니다.

 

하지만, 답답한 숨을 몰아쉬던 박 서기관은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강 대사는 혼절한 박 서기관의 부인에게 "남편이 이탈리아 로마로 치료받으러 갔다"고 말하고는 시체를 청소용품 광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날 밤, 남쪽 화단에 매장했습니다.

 

강 대사는 매장할 때에, 박 서기관의 머리를 한반도로 향하도록 눕혔습니다. 북한의 김 대사는 직원들을 도열시킨 뒤에 "그대는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용감이 싸우다 희생한 우리의 영웅이오. 그대의 혼이여! 편히 잠드시라"고 조사를 읊었습니다.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다.

 

이탈리아 대사관저 현관에 숙소를 차린 남북한 사람들은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이튿날인 11일 구조기가 공항 하늘을 맴돌다가 그냥 돌아갔습니다. 북한 측 숙소에 모인 남북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했습니다.

 

영화 모가디슈 中
영화 모가디슈 中

 

강 대사가 먼저 "북한에도 강씨가 많이 사느냐", "남남북녀 라는 말을 들어봤느냐", "북쪽에서도 문중을 따지느냐" 등의 화제를 던지면서 가볍게 담소를 나눴습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 무렵, 남북한의 두 대사는 김 대사의 손자에게 말을 걸면서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김 대사는 "고향이 남포인데 오래 전에 그 곳에 이십여리나 되는 둑과 갑문을 세워 담수를 모아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 농사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필사의 탈출.. 12일 간의 탈출기의 마무리

 

이탈리아 대사관 측은 이튿날인 1월 12일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 이탈리아 시민과 함께 남북한 대사관 직원 일행을 공항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시간대에는 정부군과 반군에게 전투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대탈출의 날'이 밝아왔습니다.

 

아침에 영국 BBC 방송이 코리아 외교관 한 명이 소말리아 내전을 피하던 중 피격으로 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강대사는 이미 본부에 보고할 전문 기안을 마쳤고, 김 대사에게 박 서기관 사망과 북한 직원들의 근황을 평양에 보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식량농업기구(FAO)

 

로마의 식량농업기구(FAO) 북한 대표부를 통해 평양에 보고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까지 제시했습니다.

 

이때, 강 대사는 본의 아니게 남북한 최초의 통합 대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 대사는 김 대사가 북한 직원들을 시켜 만들어 온 전보 기안문의 표현을 직접 수정하고, 직접 영문 번역까지 손수 했습니다.

 

강 대사는 자신이 서울에 보낼 전문과 북한 측 전문을 함께 들고 가서 이탈리아 시카 대사에게 타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탈리아 대사관 측은 정부군과 반군으로부터 정전(停戰) 약속을 받아낸 후, 강 대사 일행에게 출발 준비를 하라고 통보했습니다.

 

강 대사는 시카 대사에게 공항으로 가는 방탄 버스에 북한 측 부인들과 아이들 만이라도 태워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결국, 몸이 아픈 김 대사 부인과 박 서기관 부인, 그리고 아이들 4명이 그 버스에 타게 되었습니다.

 

남 북한 대사는 강 대사 공관장 차량에 동승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미니버스와 이탈리아 차량에 분승했습니다.

 

살얼음 같은 정적을 뚫고 큰 길로 나온 차량 행렬은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두 대의 구조기가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한 대는 흰색 바탕에 빨간 적십자 표지를 한 적십자사 구조기이고, 다른 한 대는 초록색이 얼룩덜룩한 군 수송기였습니다. 남북한 직원들을 태운 차량은 군 수송기로 향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땅이 흔들렸습니다.

 

활주로 밖에서 200명이 넘는 새까만 소말리아 인파가 수송기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뛰고 있었습니다.

 

강 대사 일행은 인파에 휩쓸리다시피 하며 수송기 후문에 다다랐습니다. 구조원의 손에 이끌린 강 대사는 마침내 수송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기내에서 조우한 두 대사는 "이제 안심해도 된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 고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강신성 전 칠레 대사

 

강 전(前) 대사의 이와 같은 극적인 체험은 내란에 휩싸인 타국에서 뜨거운 인간애와 동포애를 발휘하여 남북한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됩니다.

 

강신성 前 대사
강신성 前 대사

 

강 전 대사는 "극한 상황에 몰리니까 이데올로기나 국가가 없더라. 인간애적 입장에서 서로 돕고 살자는 의지 뿐이었다" 면서 "대승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해 포용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고 말했습니다.

 

"남북이 숙명적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는 외교 현실이지만, 공동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는 이념과 체제를 넘어 인간애와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남북 관계와 나아가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힘이 된다" 라는 것이 강 전 대사의 지론입니다.

 

강신성 전 칠레 대사는 1961년 외무부에 돌아온 뒤, 주인도 대사관 서기관과 주제네바 참사관, 주밴쿠버 총영사, 주유럽공동체(EC) 대표부 공사, 주칠레 대사 등을 거치면서 전방위적인 외교 경험을 쌓았습니다.

 

1988년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발급 받은 강신성 대사의 외교관 신분증
1988년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발급 받은 강신성 대사의 외교관 신분증

 

특히 소말리아 대사로 재직 중이던 1991년 내전이 터지자, 북한 공관원 14명을 이끌고 함께 위기 상황에서 탈출했던 일화가 언론에 소개되어 '이념을 초월한 인간애'로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퇴임 후인 2006년 소말리아에서의 경험을 다룬 장편 소설 '탈출'로 등단하여 소설가로 변신했습니다. 2007년에도 소설 '붕장어'를 펴내는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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